보경사 일주문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
경내에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와 보경사부도(보물 430)가 있으며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5층석탑 등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경내 전방에는 경계를 구분 하는 담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경사 경내 풍경...
천왕문
적광전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54호 (포항시)
지 정 일 : 1990.08.07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지명법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그 중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신 적광전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고쳐 지은 것으로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를 한 건물이다.
오층석탑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03호 (포항시)
지 정 일 : 1985.10.15
보경사 경내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보경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이건물은 조선숙종(肅宗) 3년(167)에 새로 지었고,
그 후 몇 차례보수하였다.현재의 건물에는 1923년에 대대적인 중수(重修)에
의한 양식적 특성이 주로 남아 있다.
대웅전 옆에 설치되어 있는 음수대
원진국사부도비
종 목 : 보물 제252호
지 정 일 : 1963.01.21
시 대 고려시대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대웅전 뒤로 나란히 축조 되어 있는 전각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세존의 일대생애를 시기적으로 여덟가지고 나누어
그것을 팔폭화면 으로 그려 모신 전각이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 3년(AD1678)에 지총 스님이 화주 하여 세웠다.
산령각
산령각은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한 전각인데,
산신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고 불법과 선행을 행하는 사람을 수호하는 선신이다.
원진각
이 전각은 당사 창건주 지명법사의 영탱과 원진국사의 등상을 모시고,
그 밖에 서산 사명대사와 당사에서 수도와 교화를 하시다가 입적 하신
더덕 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세존이 생존해 계실 때 인도 영취산 이란데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많이 하셨는데 약하여 영산이라고도 한다.
이 영산정에는 가운데 석가세죤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로 16아라한을 배열 하였다.
명부전
명부전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음 생을 받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선악 간의 행위를 심판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 하는 관부를 형상화한 것으로서 중앙에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양
그리고 좌우로 십대왕을 모신 전각이다.
비사리구시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 하는 절간 주방의 "구시"로,
이 구시는 조선후기 보경사에서 나라 제사 때마다 많은 손님들의
밥을 퍼넣는 그릇으로 사용 되었다.
보경사 탱자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 11호로 나이는 4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종각